📑 목차
변화 이후 ‘유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 식단과 운동, 일상에서 완벽함을 내려놓으며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든 기록.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
변화를 오래 가져가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들
변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느낀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이 상태를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예전처럼 조급하거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무언가가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상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생긴, 꽤 차분한 고민에 가까웠다. 이미 나는 변화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흔들렸으며, 다시 중심을 잡는 경험도 반복해 왔다. 이제는 변화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 변화를 어떻게 오래 가져갈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시점에 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비교적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에 덧붙여진 기대라는 점이었다. 어디까지 좋아져야 하는지, 언제쯤이면 안심해도 되는지,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쌓일수록, 변화는 점점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대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되어, 지금의 상태를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유지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유지란 더 잘하려고 애쓰는 노력이 아니라, 어쩌면 덜 기대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오히려 변화를 오래 붙잡게 만드는 힘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생각은 가장 먼저 식단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났다.
나는 그동안 식단을 생각할 때마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위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지금의 내 상태에서 괜찮은 조합인지, 혹시 나중에 후회할 선택은 아닐지 스스로를 계속 점검했다. 그 질문들은 처음에는 나를 보호하는 장치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식사 시간을 편안하게 만들기보다는 긴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식사는 휴식이 아니라 판단의 시간이 되어 있었고, 그 방식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식단을 더 이상 관리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평가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다시 돌려놓고 싶었다. 무조건 채식을 해야 한다거나,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명확한 규칙을 세우기보다는, 그날의 컨디션과 활동량에 맞게 조절하는 쪽을 선택했다. 몸이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고 느끼는 날에는 고기를 먹었고, 속이 예민한 날에는 자연스럽게 더 가벼운 선택을 했다. 그 기준은 누구에게 설명하기에는 다소 모호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이어질 수 있었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숨 쉴 여지를 남겨주고 있었다.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나는 한 가지를 꽤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유지 가능한 식단은 결국 설명할 필요가 없는 식단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왜 이렇게 먹고 있는지를 길게 설명해야 한다면, 그 방식은 언젠가 나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이 많아질수록, 그 선택은 이미 자연스러운 생활이 아니라 ‘의식적인 관리’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들은, 생각보다 쉽게 반복되었다. 굳이 말로 정리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받아들이는 방식은, 오래 이어지기에 훨씬 적합했다.
이 깨달음은 운동에 대한 태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나는 이미 심박수를 어느 정도 올리는 움직임이 내 몸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운동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정해 놓고 그에 맞춰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계획들이 생길수록, 운동은 부담으로 바뀌었고 유지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계획을 세우지 못한 날은 곧바로 ‘하지 않은 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형태가 아니라 효과 중심으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떤 운동을 했는지보다, 숨이 약간 차오르는지, 몸에 열이 도는지, 움직였다는 감각이 남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 기준은 생각보다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빠르게 걷는 것으로 충분했고, 어떤 날은 짧지만 강도가 있는 움직임을 선택했다. 일정이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그날의 상태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유지에는 훨씬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요한 것은 횟수나 기록이 아니라, 몸이 정체되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방식은 운동을 미루는 날을 눈에 띄게 줄여 주었다.
완벽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자, ‘아예 안 하는 날’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날’이 훨씬 많아졌다. 아주 짧은 움직임이라도 이어지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하게 누적되었다. 몸은 그 작은 반복을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그 기억이 다시 다음 선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다.
생활 전반에서도 나는 많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포기했다.
완벽한 루틴, 이상적인 하루의 모습, 매일 같은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일정이 흐트러지는 날도 있었고, 식사 시간이 엉키는 날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그날 이후의 선택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더 집중했다. 하루의 앞부분이 흐트러졌다면, 뒷부분을 조금 더 가볍게 정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선택은 나에게 생각보다 큰 자유를 주었다.
유지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완벽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안정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하루를 점수처럼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 하루가 끝났을 때,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감각만 남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감각은 나를 안심시키는 기준점이 되었고, 다음 날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이 시기에 기록의 역할 역시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무엇을 잘 지켰는지, 어느 기준을 만족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면, 이제는 그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적기보다, 어떤 선택들이 특별한 노력 없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이어진 행동들,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선택된 순간들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다.
그 기록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잘 지킨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구분해 주기보다는, 어떤 선택들이 생활 속에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선택들은 대부분 무리하지 않았던 순간들이었고, 오래 남은 행동들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그 기록을 통해 나는 유지의 핵심이 의지나 결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유지’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유지는 더 나은 상태를 끝까지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다시 크게 무너질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들어 가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흐름이 느슨해지는 날이 있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그 기준점만 남아 있다면,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질 수 있었다.
이 글은 변화를 시작한 이후, 그 변화를 오래 가져가기 위해 내가 의식적으로 포기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빨리 좋아져야 한다는 조급함,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시선,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던 태도.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았을 때, 변화는 오히려 더 단단하게 생활 속에 남아 있었다. 유지란 더 많이 쥐는 일이 아니라, 내려놓을 줄 아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이 시기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유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이후, 다시 찾아왔던 재검진을 앞두고 내가 어떤 마음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느껴졌던 감정들은 이전과 분명히 달랐고, 그 차이 역시 중요한 변화의 일부였다. 변화는 더 이상 숫자로만 증명되지 않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나에게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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