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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흔들릴 때, 돌아오는 자리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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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릴 때마다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하며 달라진 삶의 태도.
    몸의 신호를 신뢰하며 관리와 통제에서 벗어난 이후, 흔들림 속에서도 삶을 복원하는 방식을 정리했다.

     

    다시 흔들릴 때, 돌아오는 자리가 있다는 것

    아무리 태도가 바뀌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도 흔들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의 감각을 신뢰하게 되었고, 삶을 판단하던 기준을 내려놓았으며,

    불확실함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예고 없이 흔들린다.

    다시 흔들릴 때, 돌아오는 자리가 있다는 것

     

    어떤 날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날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하루의 균형이 무너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몸이 먼저 무거워지는 날도 있다.

    이 연재를 써 내려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완전히 단단한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흔들릴 때마다 완전히 길을 잃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끝없이 헤매는 대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예전의 나는 흔들리면 곧바로 방향을 잃었다.
    불안해지는 순간, 나는 더 많은 기준을 세웠다. 무엇이 문제인지 규정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으려 애썼다.

    통제력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고, 그 과정에서 몸이 보내는 신호는 쉽게 무시되었다.

    흔들림은 곧 실패의 신호였고,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다.

    멈추면 안 된다고,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흔들림은 오히려 더 커졌다.

    중심을 찾기 위해 쓴 힘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중심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몸의 감각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흔들림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졌다.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

    흔들림을 없애야 할 오류나 결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상태로 바라보게 되었다.

     

    대신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분석하기보다, 지금 이 흔들림이 몸에 어떤 신호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호흡이 평소보다 얕아졌는지, 어깨나 턱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는지, 속이 조여 오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그 신호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순간, 흔들림은 더 이상 막연하고 추상적인 불안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현재의 상태가 되었다.

     

    이 구체성은 나를 다시 현재로 데려왔다.
    생각은 늘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거나,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을 앞서 걱정한다.

    흔들릴수록 생각은 더 멀리 달려가지만, 몸은 언제나 지금에만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의 바닥, 지금의 무게, 지금의 호흡.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서 있을 수 있었다.

    흔들림을 억지로 없애지 않아도, 그 안에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감각이 조금씩 쌓였다.

    흔들림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끝이 반드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자리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다.
    명상이나 휴식처럼 정해진 형식의 행위도 아니었고,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의식도 아니었다.

    그 자리는 지금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아주 단순한 과정에 가까웠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 발바닥이 바닥을 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 과정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고, 때로는 잘 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언제든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이전보다 훨씬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이 변화는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바꾸어 놓았다.
    예전에는 무너진 날을 곧바로 실패로 규정했다.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판단은 곧 자기비난으로 이어졌고, 그 비난은 다시 다음 날의 긴장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흔들린 날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면, 그 하루는 실패가 아니라 복원의 과정으로 남는다.

    무너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돌아오는 삶. 이 두 가지 삶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후자는 나를 덜 소모시켰고, 하루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흔들림 자체보다, 그 이후에 어디로 돌아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돌아오는 자리가 있다는 감각은, 나를 무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신중하게 만들었다.

    무리해서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은,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예전에는 흔들릴수록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흔들릴수록 더 세심해져야 한다는 쪽에 가까워졌다.

    지금 이 선택이 나를 더 흔들리게 할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안정시키는 방향인지. 그 질문은 언제나 생각보다 몸을 향해 있었다.

     

    머리로 따져보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몸에 있었다.
    몸이 보내는 미세한 저항,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 혹은 이유 없이 올라오는 피로감.

    그런 신호들은 이제 더 이상 무시해야 할 잡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방향을 재조정하라는 신호에 가까웠다.

    이 길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가파르다는 표시, 잠시 속도를 늦추라는 요청.

    그 신호들을 존중하자, 선택은 더 느려졌지만 훨씬 덜 위험해졌다.

    무모함 대신 지속 가능성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복원의 감각은 조용히 작동했다.
    관계에서 흔들릴 때, 예전의 나는 곧바로 관계 자체를 문제 삼거나, 반대로 나 자신을 과도하게 조정했다.

    더 맞추거나, 더 물러나거나, 아예 거리를 두는 극단적인 선택들이 잦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흔들림이 생기면, 그 흔들림이 내 몸에 어떤 반응을 남기는지를 먼저 본다.

     

    이 불편함이 경계를 넘었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단순한 오해나 일시적인 긴장인지. 몸이 먼저 알려주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려 한다.

    그 구분이 가능해지자, 관계는 덜 극단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갈등이 관계의 끝을 의미하지 않았고, 모든 불편함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때로는 그냥 지나가도 되는 감정도 있었고,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파동도 있었다.

    이 사실을 몸이 먼저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계는 이전보다 덜 팽팽해졌고, 동시에 덜 소모적으로 변했다.

     

    돌아오는 자리는 결국, 기준이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졌다.
    명확한 원칙이나 규칙, 외부에서 가져온 잣대가 아니라, ‘이 상태에서도 다시 설 수 있다는 경험의 축적.

    하루를 통과했고, 또 하루를 통과했고, 흔들렸지만 다시 돌아왔다.

    이 반복된 경험들이 쌓이면서, 삶에 대한 신뢰는 생각보다 단단해졌다.

     

    이 신뢰는 확신처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눈에 띄는 자신감도, 분명한 답도 아니다.

    다만 바닥처럼 늘 그 자리에 있다. 발을 디딜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감으로.

     

    이 연재를 통해 나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몸을 신뢰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하며, 때로는 거칠다.

    계획은 자주 어긋나고, 감정은 예상보다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더 이상 길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계속 조정되는 상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를 것이고, 그 차이만큼 다시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은 더 이상 불안의 근원이 아니다.

    조정 가능하다는 사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감각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완벽함이 아니라 복원력으로 이어지는 삶.

     

    이제 삶은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삶은 통과해야 할 시간이며,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수없이 흔들리고 또다시 돌아온다.

    하루를 잘 관리했는지보다, 하루를 어떻게 통과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몸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 한, 나는 완전히 길을 잃지 않는다.

    그 믿음은 여전히 연약하고, 때로는 의심받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감각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연재의 시작에서 나는 몸을 이해하려 했다.
    몸의 신호를 해석하고, 몸의 변화를 기록하며, 몸과 잘 지내는 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내가 정말로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몸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그 태도를 가장 솔직하게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돌아오는 자리, 그 자리가 어디인지 몸은 늘 먼저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 글이 끝난 이후에도, 나는 계속 흔들릴 것이다.

     

    완전히 안정된 상태로 머무르는 날보다,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날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흔들림의 끝에 반드시 무너짐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는 언제나, 생각이 아니라 몸의 감각 안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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