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관리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 이유와 그 이후의 태도 변화. 지금의 감각을 존중하는 선택이 삶 전반에 미친 영향을 돌아본다.
예전의 나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
가끔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다.
지금의 방식이 너무 느슨해진 건 아닐지,
혹시 스스로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대하고 있는 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 문득 찾아오는 질문에 가깝다.
특히 몸이 예전만큼 빠르게 반응하지 않거나, 하루의 밀도가 예전보다 낮아졌다고 느껴질 때면 그 질문은 더 또렷해진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더 단단해 보였고, 더 분주했고, 무엇보다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있던 나.
관리를 철저히 하던 시절의 나.
규칙이 분명했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던 시간들.
선택 앞에서 오래 망설이지 않아도 되었고, 정해진 기준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불안은 늘 곁에 있었지만, 적어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만큼은 분명했다.
계획을 지키고, 기준을 넘지 않으려 애쓰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던 나.
그 시절의 나는 분명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고, 그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얻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방식이 지금보다 더 안전하지 않았을까 하고.
불안하더라도 규칙이 있다는 건 예측 가능성을 의미했고, 예측 가능성은 곧 안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알고 있었고, 넘지 말아야 할 선도 분명했다.
기준 안에서 움직이는 한,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시절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기에, 이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조금 느슨해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가끔은 그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지금의 선택이 성숙함인지, 아니면 회피는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들.
그 질문은 아직 명확한 답을 갖지 않은 채, 조용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끝에 늘 같은 결론에 닿는다.
여러 번 망설이고 비교해 보아도, 결국 마음이 향하는 곳은 늘 같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과거의 방식이 틀렸기 때문도 아니고, 그 시절의 내가 미숙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지금의 삶이, 지금의 나에게 더 잘 맞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이 달라졌고, 그 차이를 이미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며 앞으로 나아갔다면, 지금의 나는 나와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다.
그 차이는 속도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정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동시에 늘 쫓기고 있다는 감각도 함께 따라왔다.
지금은 크게 앞서 나간다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지금의 삶에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여유는 성과가 없어서 생긴 것도 아니고, 개선을 포기해서 얻어진 것도 아니다.
더 잘하려는 마음이 사라진 결과도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에서의 여유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아는 상태에 가깝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자신을 끌고 가는 대신, 지금의 속도를 인정하며 함께 걷고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은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끝낼 때까지 조용히 영향을 미친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만족감은 줄어들 수 있지만, 하루를 무사히 지나왔다는 안정감은 훨씬 또렷해졌다.
그 안정감 덕분에 삶은 이전보다 훨씬 덜 소모적으로 흘러간다.
몸을 끌고 가는 삶과, 몸과 함께 걷는 삶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전자는 늘 목표를 향해 밀어붙이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현재를 존중하며 이동하는 방식에 가깝다.
전자는 성취를 남기지만 흔적도 많이 남기고, 후자는 큰 변화는 없을지 몰라도 균형을 남긴다.
지금의 나는 후자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고, 그 선택이 삶을 완전히 바꿔놓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다르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분명해져 버렸다.
이제는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낯설게 느껴질 만큼, 지금의 감각이 삶의 기준이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지금의 길 위에 머무를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가 끝나면 늘 평가가 남았다.
그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통과했는지보다 얼마나 기준에 맞게 살았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잘 지켰는지, 어긴 건 없는지, 놓친 부분은 무엇인지.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은 쉬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점검표를 확인하는 순간에 가까웠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채점하듯 하루를 훑어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점검은 언제나 내일을 향해 있었다.
오늘의 상태를 그대로 두기보다는 부족함을 정리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오늘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일은 더 잘해보겠다는 다짐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루는 끝났지만, 마음은 좀처럼 쉬지 못한 채 다음 날로 넘어갔다.
그 평가 속에는 늘 긴장이 섞여 있었다.
오늘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감각, 아직 더 나아질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마음 한가운데 남았다.
잘한 날보다 아쉬운 날이 더 또렷이 기억되었고, 괜찮았던 선택보다 부족했던 순간들이 더 오래 머물렀다.
하루가 끝날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기보다 오히려 더 분주해졌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야 한다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가 끝나면 평가 대신 질문이 남는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 오늘의 선택이 나를 소모시켰는지 아니면 지켜주었는지를 조용히 돌아본다.
얼마나 해냈는지보다, 어디까지 무리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해졌다.
질문의 대상이 결과에서 상태로 옮겨가자,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달라졌다.
질문의 방향이 바뀌자, 하루의 무게도 달라졌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 대신, 괜찮았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남았다.
하루를 성과로 환산하지 않게 되자, 실패와 성공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대신 오늘의 선택이 나에게 어떤 감각을 남겼는지가 하루의 결론이 되었다.
피곤했는지, 편안했는지, 억지스럽지는 않았는지.
그 결론은 크지 않았지만 조용했고, 그래서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 변화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안다.
지금의 방식이 완성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한가운데에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몸은 계속 변할 것이고,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고 관계의 형태가 달라질 때마다 나의 태도 역시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오늘은 괜찮았던 선택이 내일은 어색해질 수도 있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예전과는 다르다.
다시 예전의 방식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규칙이 분명하던 시절의 단순함, 기준이 주던 안정감이 필요해지는 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흔들림조차 이 과정의 일부라는 걸 이제는 안다.
변한다는 사실이 곧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앞으로의 글에서는 이 흐름이 삶의 다른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자세히 기록하려 한다.
몸을 중심에 두고 시작된 변화가 일과 관계,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 하나씩 짚어보고 싶다.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효율과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은 여전히 유효한지.
관계 속에서의 거리감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까워진 부분과 멀어진 부분은 무엇인지.
미래를 계획하는 방식 역시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예전처럼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의 상태를 기준으로 조금씩 방향을 조정하고 있는지.
몸을 중심에 두고 시작된 변화가 생각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감각을, 서두르지 않고 따라가 보려 한다.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부정이 아니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거나, 그 시절을 실패로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
그때의 나 역시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선택도 가능해졌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단절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다만 지금의 감각을 존중하겠다는 선택이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인정하겠다는 태도, 더 이상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재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그 태도는 크고 분명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선택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 선택은 하루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질문 하나, 사소한 선택 하나가 쌓이면서 서서히 형태를 갖춘다.
오늘의 질문이 내일의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다시 수정되며 조금씩 방향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축적이 결국 다음 글의 시작이 된다.
아직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준비의 기록으로 남기며, 자연스럽게 다음 흐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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