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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고치려는 관리를 내려놓은 이후 경험한 변화의 기록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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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고치려는 관리를 내려놓은 이후 경험한 변화의 기록. 몸의 신호를 신뢰하기 시작하며 회복, 불안, 일상의 속도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담은 개인 에세이.

     

    몸을 고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후, 삶이 조금 덜 급해졌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속도였다.
    예전에는 회복에도 분명한 속도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아프면 빨리 나아야 했고, 불편하면 즉시 정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회복이 더디게 느껴지는 날에는 스스로를 다그쳤고, 그 다그침마저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느리게 회복되는 것 같으면 괜히 뒤처진 기분이 들었고, 그 불안은 다시 속도를 재촉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회복은 기다림의 과정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구간처럼 여겨졌다.

    몸을 고치려는 관리를 내려놓은 이후 경험한 변화의 기록

     

    지금은 다르다.
    회복에는 정해진 속도가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 나아질 수 있는 만큼만 나아가도 충분하고, 어떤 날은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겼다.

    오늘의 회복은 오늘의 속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자, 내일을 앞당기려는 조급함도 함께 사라졌다.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자, 몸은 더 이상 방어적인 긴장 상태에 머물지 않았다.

     

    이 변화는 아주 미묘했지만 분명했다.
    회복을 서두르지 않으니, 몸이 보내는 신호도 과장되지 않았다.

    불편함이 생겨도 그것이 오래 머물 것이라는 예측부터 하지 않게 되었고, 그 덕분에 몸은 필요 이상의 긴장을 만들지 않았다.

    회복을 목표로 삼지 않자, 오히려 회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감각은 나를 안심시켰고, 몸을 다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떨어지게 했다.

     

    속도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멈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리듬을 존중하는 일이었다.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가려 애쓰던 시기보다, 지금의 나는 훨씬 안정적으로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회복의 속도를 몸에게 맡기자, 나는 더 이상 결과를 앞당기기 위해 현재를 소모하지 않게 되었다.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몸의 긴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회복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생각을 쉬게 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명상이나 독서를 시작한 이유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마음을 수련하겠다는 의지도,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도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생각을 쌓아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이어지던 분석과 해석, 판단과 예측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려 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간이 뇌를 쉬게 하고 전반적인 집중력과 안정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들이,

    정보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 감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조용해지자, 그동안 잘 들리지 않던 몸의 신호가 이전보다 또렷하게 느껴졌다.

    생각이 줄어들수록 감각은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졌다.

    몸은 늘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그 신호를 덮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몸의 감각이 살아나자, 불편함을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주 작은 이상도 곧바로 확대 해석했다.

    이 불편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은 없는지, 지금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신호를 하나의 정보로만 받아들인다.

    판단이나 결론을 붙이기 전에, 그저 이런 감각이 있구나하고 인식하는 데서 멈춘다.

     

    불편함이 곧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은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불편한 날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흐름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고, 하루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서 다음 날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몸을 덜 의심하게 되었다.

    몸은 생각보다 훨씬 유연했고, 즉각적인 개입 없이도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위장 상태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예전에는 위장의 반응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왜 불편한지를 끊임없이 분석했고, 작은 변화에도 원인을 찾아야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장 건강이 단순히 음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몸 전체의 리듬과 순환, 긴장 상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심장이 안정적으로 뛰고, 혈액순환이 원활할 때 몸 전체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관점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내려놓게 했다.

    특정 음식이나 특정 증상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전반적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몸의 한 부분만 떼어내 관리하려던 태도에서 벗어나자, 위장 역시 과도한 관심에서 자유로워지는 듯했다.

     

    그 이후로 나는 몸을 세분화해서 관리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하루의 리듬을 크게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무리한 일정, 과도한 긴장, 필요 이상의 자기 점검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몸은 충분히 반응했다.

    예전에는 관리 항목이 줄어들면 불안해졌고,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관리할 것이 줄어들수록 안도감이 생긴다.

    더 이상 모든 신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몸은 계속해서 나에게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고, 나는 그 신호를 믿고 필요한 만큼만 조정하면 되었다.

    그 단순해진 관계 속에서, 몸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이 변화는 삶 전반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계획이 틀어져도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하루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 그 하루 전체가 실패처럼 느껴졌다.

    일정이 밀리거나 흐름이 깨지면, 나 자신을 다시 조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몸을 고치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후, 삶 역시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조정해가며 지나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인식의 변화는 생각보다 컸고, 나를 훨씬 덜 피로하게 만들었다.

     

    물론 여전히 불안은 찾아온다.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도 있고,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운 순간도 있다.

    아무런 계기 없이도 불안이 스며드는 날이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은, 그 불안이 예전처럼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안이 있다고 해서 하루를 중단하지 않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도 해야 할 일은 이어진다.

    몸은 그 안에서 나름의 균형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 과정을 굳이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몸을 고치지 않겠다는 결정은 결코 포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책임을 다르게 지는 방식에 가까웠다.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책임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존중하는 책임이었다.

    지금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그 상태에 맞게 살아가겠다는 선택이었다.

    이 책임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웠고, 무엇보다 지속 가능했다. 매일 같은 기준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었고,

    상태가 달라질 때마다 나를 다시 설득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연재를 써 내려가며 점점 확신하게 되는 사실이 있다.
    몸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관계는 통제로 유지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듣고, 반응을 기다리고, 그에 맞게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이어진다.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치려는 태도를 내려놓자, 몸과의 관계는 훨씬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불편함이 생겨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고, 변화가 있어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앞으로도 몸은 계속 변할 것이다.
    완전히 편안해지는 날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다시 불안해질 것이고, 컨디션이 흔들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지금의 상태가 곧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신뢰하는 한, 나는 언제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삶은 이전보다 훨씬 덜 급해지고 있었다.

    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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