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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준이 사라진 이후 몸의 감각이 기준이 되기까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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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의 기준이 사라진 이후 몸의 감각이 기준이 되기까지의 변화. 정답 없는 선택 속에서 책임과 안정이 어떻게 공존하게 되었는지를 정리했다

     

    선택의 기준이 사라진 뒤에 남은 것

    기준이 없어진다는 건 늘 불안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무언가를 판단할 때 붙잡을 수 있는 선이 사라진다는 뜻이었고, 그 선이 없으면 나는 금세 흔들릴 것 같았다.

    삶을 지탱해 주던 구조가 무너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무엇을 먹을지, 얼마나 쉴지, 어디까지 무리해도 되는지 같은 사소한 선택들조차 기준이 없으면 통제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기준은 때로 나를 억누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그 기준들 덕분에 나는 덜 고민할 수 있었다.

     

    매번 선택 앞에서 멈춰 서지 않아도 되었고, 정해진 선 안에서 움직이면 된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기준을 따랐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덜 의심할 수 있었다.

    그 기준을 지키고 있다는 감각은 곧 잘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 기준들이 하나씩 느슨해졌을 때, 처음에는 방향을 잃을 것 같았다.

     

    마치 나를 붙잡고 있던 손잡이가 조용히 사라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특히 몸과 관련된 기준이 흔들릴 때 불안은 더 커졌다.

    이만큼 먹어야 한다,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 이쯤에서 쉬면 안 된다는 규칙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답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곧바로 방치와 방임을 떠올렸다.

    기준 없이 몸을 대하면 결국 흐트러질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의외로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혼란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모든 기준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른 기준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이 선택이 괜찮은지 아닌지를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알려주기 시작했다.

    계산하거나 비교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신호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배가 고픈지, 피곤한지, 더 가고 싶은지, 아니면 멈추고 싶은지.

    아주 기본적인 감각들이 다시 목소리를 갖기 시작했다.

    그 신호들은 크지도, 극적이지도 않았지만 분명했고, 꾸준했다.

    기준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몸은 이미 다음 선택을 위한 힌트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동안 그 신호를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는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천천히 배우고 있었다.

    이 감각은 명령이 아니라 제안에 가까웠다.
    따르지 않아도 벌을 받지 않고, 거부해도 즉각적인 결과가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제안을 무시할수록 몸은 점점 더 분명한 방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나는 기준을 새로 만드는 대신, 감각을 다시 듣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기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준의 형태가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숫자나 규칙 대신, 지금의 상태를 느끼는 감각.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기준이 되어주고 있었다.

     

    선택은 분명 단순해졌지만,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택 앞에서의 태도는 더 조용하고 신중해졌다.

    기준이 사라지자, 선택의 폭이 넓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보다는, 무엇을 선택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먼저 다가왔다.

     

    그만큼 선택은 덜 분주해졌고, 대신 더 또렷해졌다.

    오히려 책임은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기준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규칙이나 정답 뒤에 숨을 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의 기준을 따랐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할 수 없고, 정해진 방식대로 했으니 책임이 없다고 넘길 수도 없었다.

    결정권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 만큼,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 책임은 생각했던 것처럼 무겁지 않았다.
    불안이나 부담으로 어깨를 짓누르기보다는, 오히려 삶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선택의 결과를 외부에서 평가받지 않게 되자, 흔들림이 줄어들었다.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을 진다는 건, 비난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선택을 인정하는 일이 되어갔다.

     

    흥미로운 건, 실패에 대한 감각도 함께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실패라는 낙인이 따라붙었다.

    정해진 선을 넘었는지, 규칙을 어겼는지가 판단의 기준이었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결과가 어떻든 실패로 분류되었고, 그 실패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선택이든 하나의 경험으로 남는다.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그것을 실패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선택을 할 당시 몸이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를 돌아본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는지, 아니면 잘 들었는지.

     

    그 정도의 피드백만 남을 뿐이다. 잘못했다는 평가보다, 다음에 참고할 감각 하나가 더해진다.

    이렇게 실패의 무게가 가벼워지자, 선택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틀리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대신, 지금의 상태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기자, 삶은 조금 더 유연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선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나를 위축시키는 사건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덜 몰아붙이게 되었다.
    무언가를 더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방향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늘 부족한 부분을 먼저 찾고, 더 채워야 할 지점을 계산했다면,

    지금은 이미 하고 있는 선택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다는 건 나태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채찍으로 삶을 움직이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잘하려는 마음보다, 어긋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앞서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더 성취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지금의 나를 해치지 않는 선택이 무엇인지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생각 대신, 이 선택이 현재의 나에게 과하지 않은지를 묻게 되었다.

     

    이 선택이 나를 더 몰아세우는지, 아니면 조용히 지켜주는지.

    질문의 방향이 바뀌자 선택의 결도 달라졌다.

    기준 없는 삶은 방임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세심한 관찰을 요구했다.
    정해진 규칙이 없기에 대신 더 자주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했다.

     

    몸의 반응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자동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매 순간 감각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동안 규칙이 대신해 주던 판단을 이제는 내가 직접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를 대하는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한 번 더 기다리게 되었다.

     

    몸의 반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천천히 움직이고, 생각을 앞서 보내기보다 현재의 감각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다.

    피곤함이 올라오는 순간에도 예전처럼 무시하지 않고, 그 감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한 번 더 귀 기울였다.

    괜찮다는 신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당장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허용,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인정.

    그 과정은 분명 번거롭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여 몸을 살피는 일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감각이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솔직해진 하루는 예전보다 덜 극적이지만, 분명 더 안정적이었다.
    크게 잘해냈다는 성취감도, 완전히 무너졌다는 좌절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무리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감각이 하루의 끝에 남았다.

    그 감각은 크지 않았지만,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조용히 쌓여갔다.

    아마도 이 선택의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몸은 계속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선택의 기준 역시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지금의 방식이 영원히 정답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정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상태에 있다.
    모든 선택에 확실한 답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틀릴 가능성을 감안한 채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안정감이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긋나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선택.

    그 조용한 반복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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