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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신호를 신뢰하며 선택의 기준이 바뀐 이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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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신호를 신뢰하며 선택의 기준이 바뀐 이후의 일상. 몸을 관리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난 뒤 삶의 속도와 관계,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차분하게 기록했다.

     

    몸을 신뢰하는 삶이 만들어낸, 조용한 선택들

    몸을 관리하지 않기로 한 이후, 삶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들이 이어졌다.

    여전히 일상을 살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일을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특별한 전환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삶의 모습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몸의 신호를 신뢰하며 선택의 기준이 바뀐 이후의 일상

     

    다만 같은 하루를 지나면서, 그 안에서 선택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미루는지보다 그 선택을 대하는 마음의 결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 변화는 크지 않았고,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했다.

     

    하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감각이 남아 있었다.

    예전보다 덜 흔들리고, 덜 조급해졌다는 점에서 그 차이는 분명했다.

    하루가 끝났을 때 남는 피로의 성격도 달라졌다.

    더 이상 스스로를 몰아붙인 흔적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낸 흔적에 가까웠다.

     

    이제 나는 선택을 앞두고 서두르지 않는다.
    결정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서두르지 않는 쪽에 가깝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늘 미래를 먼저 떠올렸다.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지 같은 질문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 질문들은 삶을 계획적으로 만드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현재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만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준으로 지금을 판단하다 보니, 현재는 늘 준비 단계에 머물렀다.

     

    지금의 나는 그 질문들 대신, 훨씬 단순한 감각을 먼저 확인한다.
    이 선택이 지금의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무리 없이 이어지게 하는지.

    이 기준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잘했다거나 잘못했다는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다만 방향을 알려준다.

    이 길이 지금의 나에게 너무 가파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지.

    그 방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선택은 훨씬 가벼워졌다.

     

    몸의 신호를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선택을 몸에 맡긴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과 감각을 분리하지 않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머리가 먼저 결론을 내리고, 몸은 따라와야 하는 존재였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판단했으니, 몸이 힘들어도 견뎌야 한다고 여겼다.

     

    지금은 다르다.

    몸의 반응도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인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이미 긴장하고 있다면,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특별히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마음과 몸이 편안하다면, 그 선택을 지나치게 의심하지 않는다.

     

    이 과정은 선택의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대신 선택 이후의 흔들림을 크게 줄여주었다.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 계속해서 되묻지 않게 되었고, 이미 지난 선택을 자주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선택의 질이 좋아졌다기보다, 선택을 대하는 태도가 안정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일상에서 가장 크게 느껴진 변화는 멈춤에 대한 인식이었다.
    예전의 나는 멈추는 시간을 실패처럼 여겼다.

    쉬고 있는 순간에도,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이 따라붙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커졌고,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해 다시 움직이곤 했다.

    쉬는 시간마저도 다음 행동을 준비하는 단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몸을 관리하지 않기로 한 이후, 멈춤은 더 이상 결손이 아니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속도를 낮추는 일은, 흐름을 끊는 것이 아니라 조정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멈춤은 정지가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과정이었다.

    잠시 속도를 줄였다고 해서, 삶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려주었다.

     

    이 조정은 삶의 균형을 새롭게 정의했다.
    균형이란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몸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있어도, 그것이 곧 무너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날이 있기에 다음 날의 리듬이 더 또렷해졌다.

    몸은 매일 같은 상태를 요구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균형이 깨졌을 때 다시 돌아오는 법을 더 신뢰한다.
    그 신뢰는 하루를 훨씬 덜 긴장된 상태로 만든다.

    오늘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흐름이 잠시 느려져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쌓이면서, 삶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약속 하나에도 컨디션을 계산했다.

    오늘의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효율적인지, 이 만남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후 일정에 무리가 되지는 않는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 계산은 나를 성실하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의 과제로 만들었다.

    만남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소모와 회복을 저울질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계산된 만남들은 종종 피로를 남겼다.
    상대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 자체가 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기준으로, 지금 만나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쉬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질문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상태에 솔직한지를 확인한다.

    이 기준은 관계를 줄이기보다, 관계를 훨씬 정직하게 만들었다.

    가능한 날에는 더 편안해졌고, 어려운 날에는 무리하지 않게 되었다.

    몸의 신뢰는 타인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가 나 자신의 리듬을 존중하게 되자, 타인의 속도 역시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빠르게 살고, 누군가는 느리게 살아간다.

    예전에는 그 차이를 보며 나의 위치를 가늠했고, 종종 스스로를 재단했다.

    더 빠르지 못한 나를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그 차이를 하나의 상태로 받아들인다.

    누구의 속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수용은 관계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굳이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불필요한 오해는 줄어들었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설명도 사라졌다.

    관계는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상태의 교차처럼 느껴졌다.

    그 변화는 나를 더 고립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관계 속에서 나를 덜 소모하게 만들었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변화는 분명했다.
    이제는 성과를 중심에 두기보다, 지속을 중심에 둔다.

    예전에는 한 번에 잘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집중해서 끝내고, 빠르게 결과를 만드는 것이 능력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다르다.

    끊기지 않는 흐름을 더 신뢰한다.

    몸이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 속도를 조절하고, 여유가 느껴질 때는 자연스럽게 집중이 깊어진다.

    억지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방식은 단기간의 성과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 전체를 소모시키지도 않는다.

    하루를 끝냈을 때 남는 감각이 달라졌다.

    지쳤다는 느낌보다, 이어갈 수 있겠다는 감각이 남았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일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통제력을 내려놓았는데도 삶이 더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반대였다.

    몸을 관리하지 않기로 한 이후, 나는 더 자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돌아봄은 비난이 아닌 관찰의 형태를 띠었다.

    잘하고 있는지, 부족한지를 따지기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살폈다.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일은, 나를 방심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선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더 분명하게 보게 해주었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남아 있고, 때로는 예전의 기준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이 정도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불쑥 떠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삶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몸의 감각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불안은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는 상태가 되었다.

    불안이 찾아와도, 그 감각을 지나치게 확대하지 않게 되었다. 머무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연재를 통해 내가 계속해서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하나다.
    몸을 신뢰한다는 것은, 삶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 많은 규칙을 세우는 대신,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느끼는 데 집중하게 만든다.

    그 단순함은 삶을 느슨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긴장을 덜어내고, 정말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남겨준다.

    어디에 힘을 써야 하는지, 어디에서 힘을 빼도 되는지를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이제 나는 하루를 살며 완벽한 선택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선택이 나를 지나치게 소모시키지 않았는지를 돌아본다.

    그 기준은 늘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현실적이다. 몸의 신호를 신뢰하며 선택한 하루는, 크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다.

    성과가 작아 보여도, 흐름은 이어진다.

    그 끊기지 않는 흐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이 방식이 늘 정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상황은 바뀌고, 몸의 상태 역시 계속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안다.

    몸을 관리하려 애쓰던 시절보다, 몸의 신호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지금이 훨씬 덜 불안하고, 덜 흔들린다는 것을.

    이 연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한 가지 변화만큼은 분명하다.

    삶은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나는 그 흐름 안에서 하루를 무리 없이 건너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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